공존하는 삶: 숲과 공존하는 삶

공존하는 삶:

은퇴를 앞둔 혹은 은퇴를 맞이한 시니어들에게 ‘노후’는 흔히 거대한 물음표로 다가온다. 화려한 도심의 인프라를 떠나 지리산 기슭, 3,000평의 대지 위에 자신들만의 속도로 삶을 구축해 나가는 한 부부의 15년의 기록은, 단순한 귀농의 일대기가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속도전을 멈추고,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삶의 통제권을 되찾아온 ‘현실적 생존 전략’이자 ‘철학적 수행’의 기록이며 내 친구의 삶이다.

공존하는 삶

은퇴 후의 삶: https://senior-life70.kr/wisdom-for-retired-life/

1. 공존하는 삶: 숲의 균형을 깨지 않는 농장

많은 이들이 3,000평이라는 광활한 대지를 보면 과도한 욕심을 부리기 쉽다. 하지만 이 부부는 달랐다. 숲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전체 대지의 절반인 1,500평만을 농지로 사용하는 절제력을 보여준다. 이는 자신들의 역량에 맞는 농지와 삶의 여유를 보장받기 바라는 마음에서란다.

공존하는 삶:

그들은 토양을 착취하지 않는 유기농법으로 땅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자정 능력을 유지하게 한다. 건강한 땅에서 자란 작물은 인위적인 비료 없이도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다.

그들은 땅과 공존을 선택했다. 이것이 바로 이 부부가 믿는 ‘최상의 상태’다. 다섯 줄짜리 씨앗 파종기, 낡았지만 익숙한 농기구들은 그들에게 단순히 일을 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연의 리듬을 타는 악기와 같다. 숲의 날씨는 변덕스럽고 때로는 혹독하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그 변덕을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순리를 인정하고 어우러지는 법을 배우는 매일의 수련이다. 10여년의 시간은 농부에게 무엇을 심을지보다, 무엇을 기다릴지를 가르쳐주었다.

2. 공존하는 삶: 폐자재와 40명의 친구가 지어 올린 ‘시간의 집’

현대인의 집은 상품이다. 그러나 이 부부에게 집은 ‘과정’이었다. 근처 숲이나 폐가에서 주어온 버려진 목재들, 숲에서 채취한 황토와 모래. 이들은 집을 짓기 위해 2년을 계획했고, 40명의 친구들이 합심하여 중장비 없이 스스로 집을 올렸다. 태양광 패널을 올려 처음 불이 들어오던 날, 그들 부부는 아이들처럼 좋아 했다.

내 친구는 왜 고생을 자처했을까? 예산을 아끼기 위한 현실적 선택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기억의 조각’을 구축하는 과정이 되었다. 집의 모든 구석에는 나무를 구했던 장소, 도와주었던 친구의 얼굴, 고민했던 흔적들이 묻어 있다. 방학이면 집에오는 늦게 얻은 20대 아들을 위해 완성한 1층 방은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유독 벽을 두껍게 올렸다. 아들이 좋아하는 음악 소리는 그 벽을 넘지 못하고 방 안에서 온전한 자유가 된다.

특히 물 없는 변기와 톱밥을 이용한 퇴비 시스템은 시니어들이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자연의 순환을 거스르지 않는 이러한 주거 방식은,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도 인간이 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음을 증명한다.

3. 공존하는 삶: 병조림, 노동을 예술과 수익으로 바꾸는 법

친구가 제철에 수확하는 수확물을 병조림으로 만드는 작업은 이 농장의 핵심적인 운영 전략이다. 단순히 먹거리를 저장하는 행위를 넘어, 농장의 철학을 상품화하는 과정이다. 1년 내내 안정적인 식단을 구성할 수 있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미술가에게 부탁한 라벨을 붙인 병조림은 ‘작은 농부’ 가족의 든든한 수익원이 된다.

친구 부부는 바쁜 농사일 속에서도 틈을 내어 뜨개질, 그림, 기타, 목공등 나름의 취미 생활을 즐긴다. 특히 고객들에게 답례품이 목적인 남편의 숟가락을 깎는 행위는 노후의 정신건강을 지키는 매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작은 물건 하나를 정교하게 완성하는 몰입은 뇌를 활성화하고,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효능감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작은 목공 기술이 모여 결국 집을 짓는 기술로 확장되는 과정은, 인생의 작은 성취들이 모여 거대한 노후의 자산이 됨을 시사한다.

4. 공존하는 삶: 빨간 의자의 철학, 상실을 받아들이는 방식

가장 가까운 친구를 잃은 사건은 농장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부부는 슬픔을 도피의 이유로 삼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친구를 기억하기로 선택했다. 친구가 즐겨 앉던 ‘빨간 의자’는 주방밖의 테라스에 놓았다. 언제라도 친구가 와서 앉을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관리해 두었다. 친구의 죽음조차 일상에서 배제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다. 절망을 딛고 농장을 재건하는 과정에 친구들이 다시 모여들었던 것은, 그들이 슬픔을 나누는 방식이 얼마나 성숙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시니어들에게 진정한 위로는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현재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편입시키는 데 있음을 깨닫게 한다. 나는 그들의 삶이 부럽다.

5. 공존하는 삶: 배달하는 농부

친구는 농장의 생산물을 샐러드용 채소로 가공하여 온라인으로 판매도 한다. 하지만 40km를 달려 배달하는 시간은 노동이 아니라 이웃을 만나는 소중한 사회활동이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이웃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전하며 맺은 관계들은, 귀농자가 낯선 땅에서 어떻게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나는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그래서 자주 그들을 찾는다. 산나물에 부침개를 안주하여 먹는 막걸리, 취기가 오르면 친구가 내어주는 잠자리에 하룻밤 신세를 진다.

친구 아들은 이 과정을 지켜보며 자랐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자연의 순리에 순응해야 하고, 자신의 노력만큼 정직한 대가가 돌아온다는 사실을 배운다. 겨울에는 개들과 스케이트를 타고, 여름에는 계곡을 찾아 더위를 식히는 삶. 정말 부럽다. 50 중반에 그런 결정을 한 친구가 부러울 뿐이다.

6. 공존하는 삶: 노후,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부부는 공존을 선택했다.

많은 이들이 노후를 ‘사회로부터의 은퇴’로 간주한다. 그러나 지리산의 이 부부는 노후를 ‘공존하는 삶’으로 해석한다. 그들은 문명과 떨어진 곳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문명이 망각한 ‘자립’의 가치를 재발견하러 떠난 것이다.

3,000평의 대지는 그들에게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땅을 일구고, 숟가락을 깎고, 이웃에게 배달을 나설 이유를 제공한다. 그 이유들이 모여 숲속의 행복을 완성한다. 우리가 꿈꾸는 노후가 단순히 ‘편안함’이라면, 이들의 삶은 ‘역동적인 평온함’이다.

계획하고, 실행하고, 실패하고, 다시 재건하는 과정. 그것은 50대 후반, 우리가 다시 한번 인생의 지휘봉을 잡기에 결코 늦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당신의 3,000평은 어디에 있는가? 혹은 어떤 형태의 삶으로 정의되고 있는가? 숲의 날씨가 변덕스러워도,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에게 노후는 가장 풍요로운 계절이 될 것이다. 나는 그의 삶이 부럽다.

노인에게 알맞은 운동 및 흔한 질병(전자정부 누리집):
https://www.nrc.go.kr/portal/html/content.do?depth=de&menu_cd=07_02_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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